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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의 기억

내가 기억하는 1970년대 (1)

by 멍뭉이꽃밭 2024. 9.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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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의 기록은 무척 중요합니다. 역사는 유기체와 같아서 누가 어떻게 바라보는가에 따라 왜곡되기고 곡해되기도 미화되기도 하기때문이죠. 그래서 보다 많은 사료들을 가지고 그 시절의 실상을 상상해봐야 하는 것이 역사가가 할 일일껍니다. 그래서 새로운 카테고리를 하나 만들었어요. 역사에 참고될만한 사료까지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그 시절 소시민은 어떤 생각이었는지를 알 수 있는 내용을 담아봅니다. 오늘은 1970년대를 이야기해보려해요.

 

풍로, 곤로
등유를 넣고 심지에 불을 붙이면 가스렌지역할을 하는 곤로 (사진: 6080추억상회 퍼옴)

 

 1970년대의 우리 집

 

 제가 기억하는 첫번째 장소는 성북구 장위동입니다. 우리 집엔 단층짜리 주택이었어요. 가운데에는 마루가 있고, 양쪽으로 방이 하나씩 있었습니다. 한쪽으로 꺽인 곳엔 부엌이 있었고, 기억하기로는 "곤로"를 이용해서 불을 떼고 음식을 했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다른 한쪽에는 사랑방처럼 생긴 셋방이 있었고, 그 방 옆으로 난 조그마한 계단으로 오르면 장독대가 있었어요. 어머니는 장을 담그시고는 그곳에 고추장, 된장 등을 항아리에 담아 보관하셨죠. 비오는 날이면 뚜껑을 닫고, 화창한 날이면 뚜껑을 열어 부패를 막았던 것 같아요. 그런 기억들이 납니다.

 

 'ㄷ'자 형태로 생긴 전형적인 집이었고, 가운데에는 조그마한 마당과 수동펌프가 있었어요. 물기둥이 박혀있고 둥그런 물을 끌어올리는 실린더가 있으며, 손잡이를 위아래로 움직이면 지하의 물이 올라오는 그런 펌프였어요. 세수를 하기 위해서는 그 펌프를 이용해서 물을 올려 대야에 받아서 사용해야 했죠. 

 

 화장실은 잘 기억이 나질 않아요. 아마도 요강을 사용했던 것 같아요. 어려서 그랬는지, 요강을 이용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마루에는 요강과 다듬이돌과 방망이, 그리고 아버지의 재떨이가 있었어요. 그 시절 우리 아버지들은 집안 어디에서나 담배를 피우셨죠. 그래도 아무렇지 않았던 시절이예요. 재떨이 옆에는 항상 8각형으로 생긴 성냥통이 있었고, '쭈미끼리'라고 불리는 손톱깎이가 옆에 있었어요. 손톱을 깎아야 할 때면 그 재떨이를 받치고 거기에 손톱 발톱을 깎아 버렸죠.

 

옛날집에 있었던 수동식 펌프 (사진: 오마이뉴스)

샛방의 누나

 

 사랑방으로 쓰던 샛방에는 시골에서 상경한 어떤 누나가 살고 있었어요. 낯선 그 누나를 호기심어리게 보던 기억이 납니다. 샛방 누나의 방에는 자그마한 좌식 책상 하나와 옷을 넣어 놓는 지퍼와 천으로 만들어진 옷장이 있었어요. 그 옷장의 문은 위는 둥글지만 아래로는 일자로 내려오는 지퍼 하나로 잠글 수 있는 모양이었는데, 거기에 몰래 숨어있기 참 좋은 구조였죠. 누나들과 숨바꼭질을 할 때면 꼭 거기에 한명쯤은 숨었던 것 같아요.

 

 옛날에는 샛방에 사는 분들은 함께 아침식사를 했던 것으로 기억해요. 자연스럽게 식사시간이 되면 같이 한 상에 모여 밥을 먹었죠. 그래서 샛방에 있는 사람도 주인집에 있는 사람도 다 같은 한 식구예요. 누나의 샛방 위 장독대는 빨래를 널어놓는 빨랫대도 함께 있었어요. 빨랫대는 막대기 두개를 세워 빨래줄로 대충 연결해 둔 그런 것이었어요. 빨래줄에 빨래를 널 때는 바람에 날리기 좋으니 꼭 빨래집게가 필요했죠. 빨래집게를 꼭 집어놓은 옷에는 꼭 집게자국이 남곤했어요.

 

collection book
월부 판매 아저씨가 가져다주는 전집류 서적들 (사진: 행운서점 퍼옴)

'월부'판매 아저씨

 

 낮에 집 마루에 앉아 놀고 있을 때면 '월부'판매 아저씨가 집에 들어오곤 했어요. 아이들의 눈을 현혹시키는 총천연색의 백과사전이나 위인전집, 세계문학전집 등 어떤 명작들을 편집해서 모아 둔 전집류의 책들을 파는 아저씨였어요. 또는 다양한 식기류라든지 밥솥 등등 엄마들이 좋아하는 가정용품들을 판매하는 아저씨들도 있었죠. 대부분 소개하는 카탈로그 같은 것만 들고 다니는 지라 뚜벅이 걸음으로 성큼성큼 들어와 '월부요~'하고 호객을 하죠.

 

 월부가 뭐냐하면 요즘의 할부랑 같은것이에요. 아저씨가 장부같은 것을 들고 다니며 매달 얼마씩 물건값을 받으러 오고, 대신 물건을 파는 그런 시스템이었어요. 살림살이가 뻔한 대다수의 소시민들은 이런 월부 판매를 이용해서 그동안 갖고 싶었던 비싼 물건들을 살 수 있었죠.

 

 그렇게 어머니가 월부아저씨에게 속아 책을 사놓으면 그 책이 올때까지 조마조마하게 기다리게 되요. 일주일 정도 후에 아저씨가 새책 냄새가 나는 예쁜 책을 가져오면 신나는 시간이 시작되죠. 물론 어머니는 아버지에게 쓸 데없이 돈 쓴다고 타박을 받겠지만, 우리들은 이렇게 받은 선물이 너무 좋았어요.

 

 

지금은 너무도 생소할 것 같은 그 때 이야기 다음 편에도 계속 해드릴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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