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1980년은 국민학교 그러니까 지금의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우리집은 장위동에서 월계동의 월계아파트로 이사를 갔을 때였고, 가야할 국민학교는 조금 더 멀어지긴 했어도 그 무서웠던 다리는 건너지 않아도 됐었죠. 내가 기억하는 1980년대 초의 이야기를 시작해볼께요.
새로운 일들이 가득했던 시절
나의 첫 학교는 선곡국민학교에서 시작되었어요. 공교육이 시작되기 전의 교육은 그 당시엔 어린이집이란 것은 없었고, 조금 잘사는 집 아이들이 다니는 유치원이란 것이 있을 때였죠. 그 마져도 친구들 중 절반정도나 다녔으려나... 그런 시절이었어요. 국민학교 1학년은 오전반과 오후반으로 나뉘었고 한반에 약 60명의 학우가 있을 정도로 많았죠. 그런 반이 10개반정도 있었으니 아이들이 참 흔하던 시절이었습니다. 입학하기 전에 동사무소(지금의 주민센터)에서 입학통지서를 집으로 보내왔던 것 같아요. 입학식 전에 어머니 손을 잡고 미리 학교에도 가보고 선생님과 상담도 하고 그랬었죠. 마침 누나가 먼저 학교를 다니고 있어서 모든 것은 수월했습니다.
입학식 하는 날, 선생님이 꼭 챙기라고 했던 왼쪽 가슴 포켓의 손수건을 달고 갔는데요, 요즘 친구들은 잘 모를꺼예요. 왜 손수건을 달아야 했는지... 그 당시에는 위생이나 건강 관련 상식들이 없어서 대부분의 아이들은 코찔찔이로 다녔었어요. 맹구 코에 그려놓은 콧물자욱이 괜히 그려놓은 것이 아니라, 대부분의 아이들은 코에 콧물을 달고 살았죠. 그래서 언제든지 코를 풀 수 있게 가슴포켓에 손수건을 달고 다니게 했어요. 요즘이야 손씻고 매일 샤워하고 그렇게 살고 있지만, 당시에는 목욕도 일주일에 한번 정도... 머리를 감는 것도 그정도였어요. 다들 그렇게 살았죠. 그래서 조금 더 활동적으로 땀흘리는 아이들은 손톱에 때낀 것은 물론이거니와 목에는 항상 한 두줄의 때로 그려진 까만 줄이 그려져 있었죠. 그런 것을 보면 엄마들은 손수건이나 그냥 맨손에 침을 뭍혀 박박 닦아내곤 했어요. 그 땐 그게 평범했죠.
신기한게 그 시절에는 오줌싸개들도 많았어요. 화장실은 수업 중에는 절대 갈 수 없는 곳이어서 꼭 참아야 했고, 선생님께 말을 잘 못하는 숫기없는 아이들은 말못하고 참다가 그냥 바지에 지려버리는 일이 많았죠. 오줌은 물론이거니와 바지에 응가를 지리는 아이들도 반에 한 둘은 꼭 있었어요. 우리 반에 오줌싸개로 많이 놀림받던 친구가 한명 있었는데, 저와는 단짝 친구였었죠. 그 친구와 참 재밌게 다녔던 것 같아요. 부모님끼리도 친했고, 무엇보다 같은 아파트 단지에 있어서 등하교를 함께 했었죠.
어느 날 그 친구네 집에 전화기가 새로 놓이게 되었어요. 거의 비슷한 시기에 우리집에도 놓였죠. 그래서 전화로 첫 통화를 해보던 때가 기억나네요... 정말 어색하게 빨간 유선 전화기를 들고 "여보세요...."이랬던 참 이상한 기억이라 아직도 기억나요.
그 때 대부분의 집에는 흑백TV가 있었어요. 물론 TV가 없는 집도 아주 많았죠. 그래서 학교에서 가끔 가정환경조사라는 것을 하면서 집에 있는 가전제품 같은 것이 뭐 있는지 조사를 했어요. 조사 항목에는 TV, 라디오, 전축(턴테이블 오디오), 냉장고, 세탁기...같은 것들이 있었죠. 이런 것들이 그 가정의 환경을 결정하는 요소였다니 참 신기하죠?
퇴근한 아버지들은....
당시 아버지들은 대부분 5시에서 7시면 퇴근해서 다같이 저녁 식사를 했었어요. 저녁 5시가 되면 TV에선 화면 조정시간이라고 해서 무지개 색깔의 화면과 함께 아름다운 팝송이 흘러나왔죠. 5시 30분부터 TV는 시작되는데, 시작할 때 미국 국가와 애국가가 나왔던 것 같아요. 그래서 잘은 기억 안나지만 세상에는 미국과 우리나라만 있는 줄 알았어요. 아니면 미국의 단짝 친구는 한국만 있는 줄 알았죠. 두 나라의 국가가 끝나면 곧바로 어린이 프로그램들이 시작되었어요. 다양한 만화와 모여라 꿈동산 같은 인형탈을 쓴 사람들의 연극, 그리고 호랑이선생님같은 어린이 또래의 배우들이 연기하는 어린이용 드라마 등이 방영됐었죠. 여자 아이들을 위한 순정만화도 있었고, 아무튼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빼먹을 수 없는 재밌는 만화들이 거의 7시까지 했던 것 같아요. 그 때는 방송국이라봐야 KBS, MBC, TBC 그리고 AFKN 정도 밖에 없었어서 모든 아이들이 보는 것은 뻔했어요. 이 만화가 끝날 때 쯤 되면 어머니가 "밥먹어라~" 말씀하시죠. 말듣고 바로 가봐야 아직 하나도 준비안된 상 밖에 없는지라 만화를 끝까지 보려고 듣는 척 마는 척 했던 것 같아요. 7시쯤 한 상에 둘러 앉아 밥을 먹기 시작하면 TV를 껐어요. 물론 가끔 틀어놓고 보는 특별한 날도 있었지만... 식사를 마치면 TV에서는 어른들을 위한 방송만 하기 때문에 아이들은 아파트 앞 공터에 하나 둘 씩 모이기 시작해요. 저녁 놀이가 시작되는 것이죠. 술래잡기, 얼음땡, 다방구, 사방치기, 오징어, 38선 등등 다양한 놀이가 아파트 주차장에서 시작되지요. 해가 넘어갈때까지 동네 아이들인 신이 나서 깔깔 대고 웃고 했던 것 같아요. 8시가 넘으면 엄마들이 "누구야~"하며 하나 둘 씩 불르시고 아이들은 내일을 기약하며 헤어졌죠.
생각해보면 그 때는 삶의 규칙이란 것이 있었던 것 같아요. 자유롭게 살지만, 그래도 뭔가 정해진 규칙이 있는 그런 세상이었죠. 어린이를 위한 프로그램이 하는 시간도 정해져 있으니 지금처럼 하루종일 TV앞에서 아이가 정신을 빼놓는 일이 없었죠. 뭐라도 재밌게 보내려면 밖에 나가서 친구를 찾아야 했고, 잘 모르는 또래 아이라도 함께 말걸며 친하게 지냈어야 했어요. 그렇게 사회성도 길러지는 것이죠.
아버지는 퇴근해서 하루를 마무리하는 휴식을 하시고, 어머니는 바깥에서 고생하시는 아버지를 위해 뒷바라지를 하시고, 가끔 가족들을 위해 통닭이라도 사오시면 온가족이 감사한 마음으로 즐겁게 먹었죠.
지금처럼 각자 알아서 흩어져 제 일하기 바쁘고, 통닭같은건 아무때나 시켜먹고 하는 세상에선 알 수 없는 그 감사함과 즐거움, 그리고 가족간의 끈끈함이란 것이 있었어요.
신나게 아이들과 놀다 다시 집에 돌아오면 간단하게 얼굴과 발을 닦고 잘 준비를 해요. 8시 50분쯤 되면 TV에서 아이들이 꿈나라로 가는 시간이라는 영상을 보여주거든요. 그럼 아이들은 잠을 자야 했어요. 어른들은 9시부터 뉴스와 어른들을 위한 방송을 보시고 어른들의 시간을 보내시죠. 그게 그 때 사람들의 하루 일상이었어요.
그저 소시민들에게는 평화롭고 한가로운 일상들이었어요. 바쁠 것도 없고, 각자들의 역할이 다 있었죠. 아버지는 돈을 벌어오시고, 어머니는 살림을 하시고, 아이들은 씩씩하고 건강하게 살아가는 그런 시절이었어요. 내일은 어떤 재밌는 일이 기다리고 있을까를 상상하며 편안하게 잠을 잘 수 있었던 시절이었어요.
'낭만의 기억'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내가 기억하는 80년대 중 (1) (52) | 2024.10.16 |
---|---|
내가 기억하는 80년대 초(2) (54) | 2024.10.11 |
내가 기억하는 1970년대 (2) (37) | 2024.10.02 |
내가 기억하는 1970년대 (1) (28) | 2024.09.30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