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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의 기억

내가 기억하는 80년대 중 (1)

by 멍뭉이꽃밭 2024. 10.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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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0년대의 중반을 이야기하자면 미국의 팝문화,  아시안게임, 그리고 우리는 여전히 즐겁게 놀았다는 것입니다. 잘사는 친구이건 못사는 친구이건 "친구끼리는 친하게 지내야 해!"라는 좋은 규칙이 있었죠. 모든 부모님들이 같은 생각이셨던 것 같아요. 낭만이 있었던 시절 내가 기억하는 80년대의 중반에 대해 이야기 해 볼께요.

 

마이클잭슨과 팝의 전성기, 그리고 코미디 세상

 

 당시에 TV는 채널이 몇 개 없다보니 뭔가 재밌는 것이 한번 터지면 전국민이 함께 알정도였어요. 어린 시절 우연찮게 어떤 시상식 중계를 봤는데, 그게 아카데미였는지 그레미였는지 기억은 나질 않아요. 아무튼 컨텐츠가 별로 없던 시절이어서 보통 미국의 유명한 방송을 받아다가 재송출하는 그런 시대였고, 그 시상식 중계 역시 녹화 방송을 했던 것으로 알고 있어요.

 

 미국의 흑인 젊은이가 나와 현란한 발기술과 박자에 탁맞는 춤동작으로 전 세계인의 시선을 잡은 바로 그 방송이예요. 마이클잭슨의 빌리진! 그 방송이 나간 이후로 우리 반에는 문워크나 뒤로 가는 동작을 따라하고 아예 그 곡에 맞춰 똑같이 흉내내는 것이 유행할 정도였어요. 지금의 K팝 열풍과 비슷한 모습이랄까?... 이 방송이 인기가 있었는지, 그 이후로 대거 팝송들이 홍수처럼 밀려들어왔어요. 특히 TV 방송이 시작되기 전인 오후 5시부터 5시30분까지의 화면조정시간에는 지금도 머리 속에 맴도는 팝 명곡들이 흘러나왔으니, 우리들은 팝문화에 푹 빠져 살게 되었어요. 그 나이의 어린이들이 그레미상이뭐고 각종 시상식이 뭔지 어떻게 알겠어요. 그저 좋은 곡들이 흘러나오고 신나는 일들이 생기니 참 좋아했던 것이죠.

 

Michael Jackson Billy Jean
마이클잭슨의 문워킹은 유명하죠 (사진: 유튜브)

 

 이런 시기에 딱 맞춰 박세민이라는 코미디언이 비디오 개그라는 것을 처음으로 선보였어요. 마치 한국말로 말하는 것처럼 들리는 유명 외화, 영화, 그리고 팝송의 뮤직비디오 등을 재밌게 짜맞춘 코미디도 있었고, 아예 더빙으로 상황을 재밌게 만드는 개그였는데, 너무 너무 좋아했던 나머지 아직도 기억이 나네요. 꼭 다시 보고 싶은 멋진 코미디였던 것 같아요. (훗날 박성호 개그맨이 똑같은 포맷으로 개그콘서트에서 몇번 방송한 적이 있었죠. 원조는 박세민이라는 것을 꼭 말하고 싶네요)

 

 그 당시를 얘기하자면 이주일, 남철-남성남, 심형래, 김형곤, 김정식 등등 진짜 코미디의 전성기를 이끌던 분들의 코미디 쇼를 얘기 안할 수 없죠. 누구는 그때가 독재시대다 뭐다 하지만, 그 때를 살았고 눈으로 직접 체험했던 경험으로는 그렇게 정치 풍자를 재밌고 유쾌하게 풀던 시절이 없었던 것 같아요.  심형래의 캐롤음반은 지금도 역사에 기리 남을 히트 앨범이죠. 학교 교장선생님들께 아이들에게 코미디언 흉내 내지 말게 하라고 공문이 내려왔을 정도로 아이들은 바보 심형래를 따라하는 것을 너무도 좋아하던 시절이었어요. 어찌 보면 바보같지만, 순수한 즐거움이 있던 시절이었던 것 같아요.

 

박세민
비디오개그로 유명했던 박세민 아저씨 (사진: YTN캡춰)

86 아시안게임의 추억

 

 88년 서울올림픽이 개최 확정되고, 86년 아시안게임도 성사가 되면서 우리나라는 세계의 일원이 되었던 것 같아요. 전에도 이야기했지만, 그 전에는 세상엔 우리나라와 미국만 있는 줄 알 정도였었으니까요. 아시안게임을 준비하는데 저희 큰누나네 학교가 개막식 마스게임 프로그램 중에 하나를 하는 것이 확정되었다고 들었어요. 누나는 학교 운동장에서 거의 매일같이 연습을 하고 왔었죠. 가끔 TV에 나오기도 하는데, 잠실주경기장에서 태극무늬부채를 형상화한 그 마스게임의 일원이 우리 큰누나였어요. 나중에 88올림픽때까지 그 팀이 계속 마스게임을 하게 되어 오랫동안 고생했던 것으로 기억해요. 그래도 단체가 함께 무언가를 해낸다는 결과가 있었으니, 그저 고생만으로 끝나는 것은 아니었겠죠. 지금이야 학교에서 이런 일 시킨다면 당장 학부모들이 난동을 피울텐데, 그 때는 다들 나라를 위한 일이니 열심히 해라라고 응원하는 분위기였어요. 그게 그 시절의 우리 나라 사람들의 국민으로서의 감정이었던 것 같아요. 이기심보다는 함께 이루는 공동체 의식. 억지로 당했다는 피해의식보다는 나의 희생으로 나라가 잘 되었다라는 자부심이 있던 시절이었죠.

 

 86 아시안게임이 하루 종일 중계하고 있을 때였어요. 지금처럼 방송사들이 몇몇 스타급 선수나 인기있는 종목만 경쟁하듯 서로 방송하는게 아니라 골고루 다양한 종목과 다양한 나라의 선수들을 보여주던 시절이었죠. 마침 기계체조 종목에서 우리나라 선수들이 선전을 하고 있어서  기계체조를 보고 있었는데, 일본의 이노우에 아사코라는 아주 하얗고 예쁜 체조 선수가 나오는 것을 우연히 보게 되었어요. 그야말로 한 눈에 반했죠. 마루운동에서 차이코프스키의 음악을 배경으로 하여 춤추듯 연기하던 말총머리의 아사코를 아직도 기억하고 있어요. 그래서 요즘도 그 음악을 우연히 듣게 되면 아사코가 떠오르죠. 인터넷도 유튜브도 없던 시절이라 그 때 방송으로 잠깐 딱 한 번 본 기억을 곱씹으며 마음 속에 간직했던 추억이 있습니다.

 

우리의 놀이들...

 

 포장마차에선 떡볶이가 100원어치 단위로 팔리고 있었어요. 가끔 어머니와 누나들은 직접 가서 먹기 귀찮으니 동생인 저에게 배달을 시켰죠. 노란 냄비를 하나 가져가서 떡볶이 1000원어치 달라하면 수북히 담아줬던 기억이 나요. 

 

 아파트에서는 친구들이 열심히 뛰어 다니며 놀기도 했고, 오후 5시 국기에 대한 경례하는 시간에만 잠시 쉬었던 것 같아요. 동네에는 아직 텃밭들도 군데 군데 있고해서 고구마 서리, 감자 서리, 냉이 서리들도 할 수 있었어요. 분명 도시 아이들이지만, 이런 것들이 가능했던 시절이었어요.

 

 겨울이 되면 논에 받아둔 물이 얼어 스케이트장이 되곤 했죠. 당시 강남역 사거리, 그러니까 지금의 삼성 본사 건물 있는 근처는 큰 논이 있었어요. 이곳에 '킹스케이트'장이라는 곳이 겨울마다 아이들을 불렀죠. 거기서 스케이트도 타고 떡볶이도 먹고 했던 기억이 있어요. 강남역 사거리에서 스케이트 타본 경험이 있는 사람 그리 많지 않을꺼예요. ^^

 

 여름에는 반포 뉴코아 인근에 큰 수영장에서 수영놀이도 했지만, 한강 수영장은 기억에 없어요. 그 때 거기는 물이 안좋다는 소문이 있어 안갔던 것 같아요. 방학이 되면 먼 친척집인 부산으로 놀러와 한 달 정도 머물곤 했어요. 그 때의 여행은 별다를게 없고 그저 먼 곳에 있는 친척집을 방문하는 것이었어요. 그래도 기차를 타고 가는 그 먼길이 그립고 하네요. 경부선을 타면 동대구역에서 10분을 정차하는데, 아마 기관사 아저씨들 쉬는 시간이었던 것 같아요. 동대구역에 도착하면 부모님들은 아이들을 차안에 두고 밖에 나가 줄서서 가락국수를 후루룩 먹고 돌아오셨어요. 저희도 먹고 싶었지만, 뜨거운 음식이라 그렇게 빨리 먹을 수 없었기에...그저 기차 안에서 삶은 계란과 사이다, 그리고 주황색 망에 쌓여있는 귤을 먹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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